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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보석: 추억/글

나만을 위한 속초여행

by estherjo.trumpet 2017.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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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왜 바다인지 아니? 세상 모든 물을 다 '받아'줬기 때문이야. 모든 물은 흘러 흘러 바다로 온단다. 바다는 똥물도, 강물도 모두 받아줘. 엄마는 네가 늘 바다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힘든 일도, 괴로운 일도 모두 받아낼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런데말야 바다가 주는 가장 위대한 가르침은 파도에 있단다. 파도가 크게 이는 날, 바다는 확 뒤집어지잖니. 우리가 보기엔 위태위태하지만 그 과정에서 바다는 스스로 정화를 시킨단다. ​​

준비된 숙소나 여행계획 하나 없이 무작정 고속버스터미널로 가 속초행 버스표를 끊었다. 오후 4시경, 우등석 몇 자리가 남아 있었고 다행히 대기없이 바로 출발할 수 있었다.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시간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온천에 갔던거지만,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을 꼽으라면 아마도 속초로 내려가는 버스 안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드라마에 종종 생각정리를 하고 싶다는 이유로 버스를 타고 떠나는 주인공의 장면을 볼 수 있다. 바로 그 장면! 이해하기에 항상 어려웠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먼 곳으로 가고 싶었던 이유, 먼 곳까지 떠나 바라는 심정,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안정, 정지된 시간에서만이 다독일 수 있는 위로가 무엇인지 말이다. 경험해보지 않고서야 이해할 수 없다는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또 한번의 경험과 성장으로 무언가를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내가 되어 기분이 좋다.

저녁 7시에 도착해 자연산 회를 거하게 먹었다. 혼자 다먹을 수 있을까 싶었던 6만원치의 회는 모두 내 뱃속으로 들어갔다. 식사가 끝나고 밤바다를 보러가고 싶었지만 깊은 어둠이 조금은 무서웠는지 부랴부랴 숙소로 들어갔다. 즉흥으로 온 여행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예약을 하지 않았었는데 그로인해 들어갈 수 있는 (정말) 아무 곳이나 들어가 일박을 머물게 됬다. 이를통해 실질적으로 얻은 배움이 하나있다. 아무리 즉흥일지라도 숙소만큼은 알아보고 가자! 비싼 숙소값에 비해 좋은 곳에 묵지 못한 아쉬움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럼에도 잘 수 있는 곳을 구했음에, 게다가 바다가 보이는 뷰까지 있었음에 감사이다.

1박이 지난 아침, 창 밖으로 펼쳐진 일렁임과 반짝임의 결합은 대단했다. 이 맛에 바다를 보러 왔지 싶었다. 눈부셨던 아침산책을 마치고 아침밥을 먹으러 속초중앙시장에 들렀다. 그리고 이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얻게 되었다. 시장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 (이유는 그저 맛집을 찾기 위해서) 그나마 사람이 많았던 오징어 순대집 앞을 기웃거렸다. 혼밥이 멋쩍었던 이유가 아니었다. (혼밥은 누구보다 끝장나게 자신있는 나이기 때문에) 그저 이 곳이 맛있을까 없을까 고민하던 찰나였을 뿐인데 내가 뻘쭘히 있는 줄 아셨는지 순대집 할머니께서는 나에게 손짓을 하셨다. 여기에 와서 먹고 가라는 할머니의 손짓이었다. 서성였던 내가 안쓰러우셨나 피식 한번 웃고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혼자 먹기엔 많을텐데 하시면서 만두 하나에 호박식혜 한 잔을 더 따라주시는 인자한 할머니와 서서 먹는 내내 혹여나 심심할까 말을 걸어주시는 젊은 엄마 사장님께서 운영하시는 곳이었다.

나는 매콤한 오징어 순대를 하나 시켰고 계란을 입혀 따뜻하게 부쳐주시는 모습을 보며 조용히 기다리는 중이었다. "혼자 왔어요?"/"네 혼자 왔어요!"/"잠자리는 좋은데서 잤고요?"/"급히 오느라 예약을 못하고 잤는데 괜찮은 곳에서 잤어요"/"다행이네요. 요즘은 여행도 혼자 많이 오더라구요. 그래서 생각정리는 다 됐나요?"

순간 이 대화에서 '내가 슬픈 마음을 비췄나?' 혹은 '내 표정이 지금 우울한가?' 아님 '내가 오늘 화장을 잘 못했나?' 싶었다. 분명히 오고 간 대화 속에서 생각정리를 위해 온 여행이라고 알아챌 수 있는 꺼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람도 잠시 "바다를 보며 정리될까, 모래사장을 걸으며 정리될까 싶었던 생각들이 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시간동안 모두 정리가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그저 재밌게 여행중이에요." 라는 답과 함께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여주인공들이 먼 곳으로 떠나는 장면 있었잖아요. 그 장면이 이제 이해가 되었어요. 원하던 원치않던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좋았어요. 오로지 나만을 위해 멈춰놓을 수 있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그러면서도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냥 내려오는 내내 울었던 것 같아요."

"저도 젊었을 때 그렇게 혼자 여행을 다녔어요. 이어폰 꽂고 창 밖을 내다보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근데 마음에 여유가 생길 때 눈물이 나오는 것 같아요. 티는 안냈지만 계속 힘들었던거에요. 힘든 마음을 다독여 줄 수 있는 여유가 없었으니 마음이 탁 풀리면서 울게 되는거 같아요. 잘했어요. 여행 잘 왔어요."

생각정리가 끝났음에도 뱉어내는 후련함을 느끼지 못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이렇게 해소가 된다니 너무 신기했다. 가끔은 이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위로를 얻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 혹은 내가 계획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바로 이런 위로야말로 인생을 살 맛나게 해주는 선물이 아닌가 싶다. 묻지 않는 이해, 말할 수 없이 포근한 정 말이다.​​


몸과 마음을 두둑히 채우고나선 예배를 드리러 갔다. 즉흥여행을 떠나기 전, 주일을 포함해서 갈 수 밖에 없는 일정 때문에 많이 망설였었다. 하지만 In this place, 예배의 장소보다는 내가 사모하는 시간, 마음, 목적이 온전하다면 지역이 다른 교회일지라도 된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 마음에 조금의 오차도 없는 충만한 은혜가 있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내가 가장 사모하는 말씀. 내가 가장 힘들 때, 내가 가장 기쁠 때, 언제라도 매 우선 사모했던 이 말씀을 속초 교회에서 듣게 되다니! 벅차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제나, 어디서나 완벽한 사랑하심으로 나를 안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또 한번 느꼈던 시간.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작은 먹먹함까지 모두 해결된 완벽한 평안함이었다.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나의 실수까지도 완벽히 사랑해주시는 그 은혜.

예배가 끝나고 발걸음이 떼어지는 아무 곳으로 무작정 걸었다. 내 친구들은 잘 알겠지만 나의 가방은 항상 무겁다. 일이 많아서일까, 마음이 바빠서일까 언제나 빵빵하고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닌다. 조금 저렴한 가방을 사게 되면 1년 이상 쓰기가 어렵다. (얼마전에도 독일을 다녀오고 나서 가방 하나를 버리게됨 악) 요즘은 가방값을 아껴보려는 마음에 가볍게 다니려고 노력중이다. 아무튼! 이런 무거운 가방, 일정 그리고 마음까지 모두 놓고 이곳으로 오니 참으로 좋다!

무거움 하나 없이 걷고 걷다 또 한번의 선물을 만나게 되었다. 바다 뷰를 배경으로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먹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이루기 위해 바다를 찾으러 가는 중이었다. 지나가는 길에 계셨던 횟집 부부 사장님께 바다를 가는 방법을 여쭤보니 이백원을 내고 갯배를 타야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모든 동전을 탈탈 털어 헌금을 내버린 상황이라 일푼의 동전도 없었다. 눈치를 채신걸까 횟집 부부 사장님께서 "여기까지 왔는데 갯배는 타봐야지." 하시며 400원을 쥐어주셨다. 드린 것도, 드릴 것도 없는 상황인데 다른 것을, 받을 것을 바라지 않으며 주신 그 마음이 참 감사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난 두번째 선물 덕분에 바다가 보이는 예쁜 카페에서 아몬드 커피 마시기 성공!

속초에 도착해서 하고 싶은 것은 대부분 한 것 같다. 대신 자전거타기는 실패. 바다를 끼고 자전거를 타고 싶었지만 주말이라 문을 연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다음 일정인 온천으로!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여행에 오면 꼭 하는 몇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온천가기. 온천 중에서도 꼭 노천탕! 머리는 차갑지만, 몸이 따뜻해지는 그 곳을 참 좋아한다. 아침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준비했던 헤어와 화장을 지워야한다는게 마음이 아팠지만 (이게 뭐라고) 가는걸로 과감히 결정했다. 역시나 온천은 좋았다! 크크 아마 제일 기분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역시 온천이 최고였어!)

온천, 저녁식사, 그리고 마지막 커피 한 잔까지 모두 마치고 고속버스터미널로 돌아갔다. 곧바로 있을 버스는 일반석인지라 패스하고 우등석인 8시 차표를 끊었다. 몇천원 더 내고 타는 우등석이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혹시 고속버스를 타고 여행을 가신다면 우등석을 강추) 렇게 나의 속초여행은 종료되었다. 꽤 알찼던 1박 2일, 그래서인지 아쉬움 하나 없이 빨리 서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엄마도 보고싶고, 블로그에 올릴 일기도 쓰고싶고, 다시 무거운 가방을 메야하겠지만 누구보다 가볍게 들 수 있을 것 같은 자신이 생겼다!​​

생각에도 체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습관이나 여유를 가져보려는 의지가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 생각이다. 특히 요즘 같았던 날, 찬찬히 생각 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외쳤던 내 마음에게 부응한 내 자신이 대견스럽고, 파도를 통해 스스로 정화하는 바다처럼 웅크리지 않고 또 한번 거듭나본 나에게 기특함을 표한다. 사실 거대한 여행은 없다. 어디든 가보고 난 뒤, '이게 뭐라고 한번을 못와봤을까' 싶은게 여행이다. 막상 떠날 수 있는데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무엇을 위해 아껴두고, 무엇 때문에 망설이는지.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어떤 분의 마음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꺼리가 있다면 주저말고 떠나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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