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간다고 생각해보자. 필요한 가구들이 떠오를 것이다. 가구를 생각하다보면, 가구에 어울릴 인테리어에 욕심이 날 테고, 잇따라 공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건물 구조는 어떠한 지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책에 대한 나의 감상이 딱 이러하다. 첫 시작은 그저 어떤 종류의 소파를 둘지, 어떤 의자가 잘 어울릴 지와 같은 단순한 생각들 뿐 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덮을 즈음에는, 나의 신앙적 구조가 어떠한지, 내 마음 속 믿음의 설계도는 탄탄한지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아마 오랜 신앙생활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궁금증이나 회피하고 있었던 문제들을 면밀히 관찰할 수 있게 기회를 주신 것 같다.
최근에 읽은,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했다>는 크리스천들이 가지고 있는 고전적인 문제들에 대한 방향성을 잡아주고, 어떠한 태도로 자신의 신앙을 교정해 나가야 하는지를 도와준다. 또한, 하나님을 믿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할 수 없었던 모호함을 풀어주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녀야하는 태도와 소명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특히 이 책의 후반으로 달려 나가는 과정에서 해결되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한 답변을 찾아갈 수 있었고, 내가 지녀야 할 건강하고 선명한 비전을 다시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 소명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었다. 소명이라는 것은 자신의 꿈과 비전과는 별개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무와 책임이라고 생각해왔다. 하나님께서 주신 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하는 일인 ‘소명’은 단어에서조차 무겁게 만 느껴졌고, 하나님께서 직접 (그것이 음성이든 메시지이든) 알려주지 않으시면, 알아채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혹시 나의 꿈과 하나님의 소명이 다르다면, 내가 기뻐하지 않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해야만 하는 것인지, 내가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 일을 해내야 하는 것인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결국 ‘겸손’인 것인지 복잡하고 이상한 딜레마가 생겨나기도 했다. 물론, 그러한 생각들이 내 신앙을 방해한다거나 나를 시험에 들게 하진 않는다. 무수한 고민들 앞에서 어쨌든 나의 답은 한결같이, “뭐, 어쩌겠어. 하나님이 하라면 하는거지!ㅋㅋ”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독서와 긴 묵상 끝에, 나의 소명을 확실히 찾은 것 같아 감상문을 통해 공유하고 싶었다.
사실 굉장히 뻔하고 쉬운 답이었는데, 골머리를 쓰는 내가 귀여워 보이셨을까 혹은 더는 고민하지 말고 그저 달려 나가라는 확신이셨던 것일까?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가장 직관적인 방법으로 답을 알려주셨다. 열흘 전이었을까, 내한을 한 연주자의 리사이틀을 볼 기회가 있었다. 내 음악 인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황홀함’ 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날이었다. 종종 어마 무시한 연주자들의 연주를 듣다보면 “이야, 테크닉 죽인다.”, “와 저렇게 불려면 어떻게 연습을 해야 해?”라며 방법론적으로 음악을 감상할 때가 있다.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이다. 그런데, 그 날의 연주는 침조차 삼킬 수 없이 넋을 놓고 봤던 신기한 날이었다.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도 있겠으나, 연주회 자체에 폭 빠져 연주자가 떠먹여주는 음악을 곧이곧대로 흡수하는 그 경험은 (그것도 트럼펫 독주회에서) 내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 열망이 아주 강렬하게 피어올랐다. ‘나도 이러한 황홀함을 청중들에게 경험시켜주고 싶다!’
그리고, 그날 밤, 선생님께서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우리가 무대 위에서 하는 모든 생각과 표현들을 관객들은 기필코 느끼게 돼 있어. 우리가 하려고 하는 모든 생각을 그들이 전달 받을 수 있기 때문이야. 무대 위에서 최선을 다해 좋은 연주를 하려고 표현해야해. 그게 우리가 연주자로서 그리고 무대에서 가져야 할 단 한가지의 생각이야. 근데 나 아까 사실 딱 한번 다른 생각을 했어 ㅋㅋ guilty! LOL”.
그렇다. 나의 소명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달란트를 이용해, 좋은 메세지와 감동을 전달해주는 그런 연주자가 되는 것이다. 17살에 꽃피웠던 그 꿈이 곧 나의 소명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최고로 만족을 누릴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최고로 영광을 받으신다” p.151의 내용처럼,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쁨을 기뻐하시고, 나의 기쁨이 선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 그 자체를 영광으로 기뻐 받으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소명에 대한 또 하나의 정의가 되지 않을까?
트럼펫을 시작할 때, 바흐의 명언인 “음악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영의 소생에 기여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새겨 놓았다. 그리고 이 뜻이 깊이 이해되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사모하는 음악을 통해 나의 소명을 일깨워주신 하나님께 온전히 감사드린다. 여전히 작고 부족한 나이지만, 이기심과 개인적인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성벽을 하나씩 쌓아 나가는 내가 되고 싶다. 그래서 내가 가진 소명으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수 있는 사용 받는 주님의 딸이 되고 싶다. 이 책을 통해 나를 굳건하게 하시고, 보수가 필요한 이전의 성전을 부숴 새로운 성벽을 세워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독후감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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