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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보석: 추억/글

나의 아군을 위하여

by estherjo.trumpet 2017.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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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을 하고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을 꼽자면 내가 생각했던 충분한 움직임과 동시에 충분한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날은 오전 7시에 일어나 아침밥으로 시리얼을 대충 말아먹고서 하루를 시작한다. 자투리 시간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비장함은 뿌듯한 실천으로 이루어지고 기진맥진한 하루를 결말내며 마무리 짓는다. 하지만 또 어느날은 안오는 잠까지 억지로 취하며 정오까지 잔다. 정오까지 퍼질러 잔다, 라는 말이 더 맞는듯 싶다. 잠이 더이상 오지 않으면 그제서야 이부자리 주변 어딘가에 놓여져 있는 핸드폰을 찾는다. 그리고 어젯밤 눈이 감길 직전까지 꾸역꾸역 보던 미드를 다시 본다. 한 에피소드씩 푹 빠져 보다보면 최소 세편은 보게 되고, 베게에서 머리를 떼는 나의 기상 시간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정도면 나의 게으름에 대해서 충분히 나열했다는 생각이 든다.

엄청난 비가 내린 오늘은 나의 독주회가 있던 날이다. (누가 그러던데 좋은 날에 비가 오면 더 좋은 날들이 생길거라고) 오늘은 나의 소망 목록의 하나를 완료한 날이다. 나에게 매번 올려야지 생각만 하고 여태 못올리고 있는 글이 (사실 여러개 있음) 하나 있다. 3월부터 시작해 18년 3월까지 실천될 올해 위시리스트이다. 2017년에 들어와 하고 싶은 100가지의 목록을 적었다. 누구나 꿈꾸는 항목도 있고, 독특하다 생각하는 항목까지 총 백가지의 리스트가 있다. 나의 목록들을 보는 누군가에게 도전해볼만한 소망이 생기길 바라며 쓰는 글이다. 하지만 아직도 꾸물거리는중. 아무튼 그 항목중에 하나인 '직접 프로그램 짜서 독주회하기'를 완료한 날이다. 아시다시피 독주회는 본인의 의지만 있다고 할 수 있는 연주회가 아니다. 물론 할 수야 있지만, 무대나 날짜 등 독주회를 준비하기까지 투자해야할 부분들이 아주 많다. 마음만 먹는다고 다 되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준비하고, 기다리고, 기대했던 목록이었다. 그런데 맘 먹은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니 뜻깊지 않을 수가 없다. 협연이나 솔로 연주는 많이 해봤지만 30분의 시간동안 혼자 무대를 채운건 이번이 처음이다. 독주회는 많은 준비와 부담이 따를 무대이다. 그래서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도전해보고 싶었고, 졸업연주를 하기 전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무대가 준비되었고, 기회가 주어졌다. 기쁘고 감사했으며, 소중한 기회를 알차게 꾸리고 싶었다. 휴학을 하고 난 뒤 공부해놓은 곡들을 시험 삼아, 도전 삼아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곡의 시대 차이를 두었고, 빠르고 느린곡의 조합으로 곡의 흐름 변화를 주었다. 또한 세 대의 악기를 사용하고, 많은 사람들의 귀에 익숙했던 곡도 준비하면서 욕심낸 만큼 재밌는 프로그램을 만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제가 연주할 곡은 never an absoultoin 과 내주를 가까이 입니다. 아시다시피 굉장히 유명한 타이타닉 영화에 나오는 메인 주제곡이자, 배가 침몰 되기 직전까지 하나님을 찬양을 했던 현악사중주단의 연주곡입니다. 처음 독주회여서 떨리기도 많이 떨렸고, 장시간 연주를 하며 힘도 들긴 하지만 끝까지 찬양을 했던 현악사중주단처럼 이 무대에서 끝까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내려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앵콜 직전에 했던 말이다. 이 말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느냐 생각할까 미리 답변하지만 동영상을 풀촬영했다. (목소리를 올리고 싶진 않아 타자로 씀) 오늘 연주회에서 좋았던 부분을 하나 소개하면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었던 점이다. 내가 이 곡을 선택한 이유, 준비하면서 들었던 생각, 연습하면서 느낀 감정 등을 말할 수 있었다. 나의 연주가 청중들에게 주입되는 것이 아닌 나눠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떨림보다는 설렘이, 긴장보다는 기대가 큰 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오늘이 이토록 소중한 이유는 무대 위에서 떨지 않는 방법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무대에서 긴장이 될 때 어떻게 해야되냐는 질문에 답변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나역시 내 자신에게 항상 던지는 질문이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매일 같이 붙잡고 연습하는 트럼펫이지만,한 단만 높은 곳에서 연주를 하면 상상도 못할 떨림 가끔은 두렵다못해 도망가고 싶은 긴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가라는 박수와 지지에 대응해 견뎌내야할 당연한 무게이고, 무대 위의 긴장감은 누구도 해결하고, 해소시킬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것만은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답을 찾았다. "관객들은 우리의 아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의 연주를 보러 온 사람들은 실력에 대해 점수를 차감하거나, x표 팻말을 들려고 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나의 미스톤에 같이 아쉬워 하다가도, 나의 음악에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표현하는 음악을 느끼고 박수와 환호로 격려해주는 나의 아군이었다. 물론 무대를 오르는 연주자가 적잖은 부담감 혹은 책임감을 가지고 올라가는게 맞겠다. 그마저도 없다는 것은 연주자로서의 자세 혹은 예의로부터 오류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부담감이 두려움이나 공포감이 아니어야 된다. 그 어느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투자하려 하지 않는다. 혹여나 평가를 하러 온 사람들일지언정 귀한 시간을 내어 나의 연주를 듣으러 와준 고마운 사람들이다.

살면서 연주회가 끝난 뒤 싸인을 하긴 처음이다. 꽃다발을 받거나 사진을 찍는건 많이 했지만 싸인을 해드리니 기분이 묘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새로웠고 너무나도 기뻤으며 감사했다. 감사하다며 인사를 드리니 내 손을 꼭 잡아주시면서 "연주 너무 잘들었어요. 앞으로 꼭 잘됐으면 좋겠어요. 응원해줄게요."라고 하셨다. 앞으로 무대에 섰을 때 떨릴 이유가 사라졌다. 만약 내가 떨게 된다면 연습이 부족해서이지 나를 지켜보는 청중들 때문은 결코 아닐 것이다. 나를 기도하고 응원하시겠다는 나의 아군들을 위해서 더 열심히 준비하는 연주자가 될 것이다. 귀한 마음에 더 멋진 연주로 보답하는 연주자 말이다. 특히 나에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단연코 가장 첫번째 아군이신 하나님께 평생토록 찬양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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