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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꽃: 음악/기록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연주자는?

by estherjo.trumpet 2021. 2. 14.

에릭과의 두번째 레슨, 선생님은 나에게 2019년과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너가 좋아하는 트럼펫 연주자는 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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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일관적으로 던지는 질문이 바로 이 질문이다. 좋아하는 연주자, - 나는 이 질문을 들을 때마다 뭐랄까 답답해진다. 그래도 일단, 대답은 한다. "모리스앙드레는 뭐 전설이구요, 윈튼 마살리스, 호칸 하덴버그, 필립 스미스, 데이비드 빌저, 줄리아노 솜머할더, 한스 간쉬..." 줄줄이 좋아하는 플레이어들의 이름을 대답한다. 하지만 이 대답을 하면서 어딘가 불편하고 깨림직하다. 뭐랄까 이 질문은 나를 굉장히 의기소침하게 그리고 불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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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레슨에서도, 2년 전에도, 역시나 다를 바 없이 '그 질문'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그 속내를 숨긴채 당당한 척 대답을 했다. 트럼펫을 막 시작했을 때는 딱히 불편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는 알고 있는 연주자들이 없었던 것 같다 ㅋㅋ) 그렇다고 언제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뭐랄까...그냥 언젠가부터였다. 집에 돌아오고나서,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는 불편함의 원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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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왜 이 질문이 불편한가

- 나는 생각보다 오랜시간동안 이 질문을 불편해했는데 왜 이것을 해결하지 못했을까

- 내가 이 질문에 자신있는 대답을 할 수 있으려면 무엇을 해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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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정도 지나고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본다. 그동안 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1) 왜 이 질문이 불편한가 

나는 내가 좋아한다고 말하는 연주자들 진짜로 좋아하긴 한다. 그들의 연주는 엄청나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연주적 특징을 설명하라고 해도, 그들이 왜 좋은지 이유를 말하라고 해도, 그들의 무슨 연주를 가장 좋아하나고 물어봐도 뭐하나 뚜렷하게 말할 수 있지가 않다. 그런데 과연 내가 그들은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정말 그들은 사랑하는게 맞을까?

그래서 그동안 꽤나 많은 연주자들의 인터뷰를 찾아봤다. 어차피 시간도 많기 때문에 지금만큼 이 답을 찾아내는데 최적의 타이밍은 없어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하나같이 내놓는 답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방하세요."

사실 나는 그동안 '좋은 소리'라는 것은 재능의 일부라고 생각해왔다. 뭐랄까, 발성 교정이나 연습을 하지 않고도 목소리가 좋은 사람들처럼, 타고난 소리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마치 하나의 달란트(재능)과 같은 것이라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타고난 것이 없다면 다른 재능을 강화시켜야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것이 음색이든, 테크닉이든, 성량이든 말이다.

하지만 '좋은 소리'는 "찾아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내가 가정해왔던 것처럼 좋은 소리는 '타고난' 재능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가들은 좋은 소리를 재능으로 연결을 짓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은 좋은 소리를 거의 '모방'으로 연결을 시켰다.

'모방'. 좋은 소리를 찾기 위해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은, 좋아하는 연주자의 소리를 모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질문에 사실 조금은 회의적인 자세를 취해왔었다. 모방하는 것은 다소 창조적이지 못한 행동이 아닐까? 고유의 것을 찾아나서기도 바쁜데 모방을 한다는 것은 돌아가는 일이 아닐까. 하지만 결코 아니었다. - 제대로 한 방 맞은 최근이었다. 

모방이라는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소리를 찾아야하고 좋아하는 연주자를 물색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음악을 들어야하고 많은 연주자들의 연주를 사랑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닮고 싶은, 따라하고 싶은, 모방해서라고 갖고 싶은 그런 소리를 찾기까지 굉장한 과정을 거쳐야하니 말이다. 

그렇게 좋은 소리를 찾게 된다면 '귀'로 그 소리를 따라하는 것이다. 그들의 자세, 테크닉, 음악적 표현만이 아니라, 바로,로, '소리'를 따라하는 것. 그렇게 듣고 또 듣고 또 들으면서...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좋은 소리'를 따라하다보면 마침내 나의 것이 표출되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모방은 좋은 소리를 찾아낼 수 있는 열쇠이자, 나의 소리를 발견할 수 있는 지도라는 것이다. 

 이 답을 찾고 나니 그동안 "좋아하는 연주자가 누구인가요?" 라는 질문이 불편했던 이유를 더욱 명확하게 깨달았다. 첫째, 좋은 소리를 재능이라고 분류해뒀기 때문에. 둘째, 모방에 대해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셋째, 좋은 소리를 찾기 위해 미친듯이 몰두하기 않았기 때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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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각보다 오랜시간동안 이 질문을 불편해했는데 왜 이것을 해결하지 못했을까

이에대한 나의 답은... 교만했고, 게을렀기 때문에. 사실 질문을 들어본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10년동안, -그래, 일단 고등학교 때 3년은 빼보자- 7년동안, 간간이 받아왔던 이 질문에 대해서 그리고 '모방'에 대한 언급을 들어봤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동안 단 한번도 '왜'라는 질문을 갖지 않았다. 어쩌면 '왜'라는 질문을 가졌음에도 그것을 해결하려는 태도가 없었던 것 같다. 모르겠다. 내가 가졌던 아집일 수도(소리는 타고난 것이다 라는), 중요한 이야기를 간파할 수 있는 예리함이 없었던 것일 수도(모방의 중요성은 들어봤을테니), 어쩌면 그동안 음악 듣는 일을 귀찮아했을 수도 (이래놓고 음악가가 되겠다고?) 있다. 그래서 내가 교만했고 게을렀다고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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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질문에 자신있는 대답을 할 수 있으려면 무엇을 해야하는가

음악을 듣는 것이다. 그동안 흥미롭다고 생각해본 연주자들의 연주를 모조리 찾아서 듣는 것이다. 대신 중요한 것은 음악을 듣는 시간을 따로 할애해보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에 내가 이모저모의 반성을 하면서 든 생각인데. 그동안 나는 음악을 하나의 배경음악으로 치부하거나 (그것이 어떤 종류의 음악이든), 연주를 위해 의무적으로 들어야하는 '일'의 수단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음악을 즐기는 시간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음악 듣는 시간을 따로 가질 생각이다. 사실 내가 나중에 집을 갖게 된다면 꼭 음악을 듣는 방을 만들려고 했었다. 이전에 브루스 교수님 집에 방문을 했었을 때, 교수님과 마리안 선생님과 함께 초콜랫과 티를 마시면서 오롯이 음악 듣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게 정말이지, 너무 좋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온전히 음악만 듣는 시간이었다. 따뜻한 차와 달콤한 초콜렛, 그리고 우리를 매료시키는 페트르슈카. 나는 그 시간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그때 다짐했었다. 나중에 집을 만들어서 꼭 음악을 '듣는' 방을 만들거라고 - 바로, 그 "나중에"가 문제야! 그냥 지금 해버리면 되는걸!

그래서 음악을 즐기고 충분히 그 시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일단 지금은 다소 의도적으로 그 시간에 할애를 해야한다. 나는 '좋은 소리'를 찾기 위해 '좋아하는 연주자'들을 찾기 위해 일단 의식적으로 그 시간을 가져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번 해보니까 일부로가 필요없다. 하루 중에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시간이 이 시간이라는걸 알아버렸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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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일요일, 에릭선생님에게 메일을 보냈다.

제목 : "Who is your favorite player?"

1년 반 전에, 제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도, 그리고 지난 두번째 레슨을 받았을 때도 선생님은 저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지셨어요. 솔직히 말해서 지난주에 내 대답이 "진정한" 대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내가 대답했듯이 나는 그들은 좋아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의 질문에 진심으로 대답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왜냐하면 나는 그들의 음악을 정말로 많이 듣거나, 그들을을 사랑한다고 말할만큼 그들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 질문은 솔직히 저에게 매우 어려웠어요.

두 번째 레슨을 마친 후, 선생님을 포함한 많은 뮤지션들이 항상 "좋아하는 트럼펫 연주자"를 물어보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YouTube에서 많은 뮤지션들 (다른 악기, 뮤지션, 재즈 연주자)의 인터뷰 영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좋은 소리를 따라 잡기 위해서는 먼저 모방을 해야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냈어요. 모방은 단순히 그것을 복사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사운드를 안내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그래서 내 하루에 또 다른 루틴이 생겨났어요.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집안일을 하거나 배경음악을 틀어놓드시 음악을 들어왔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음악을 듣는 시간을 따로 만들려고 해요. 이것이 좋은 소리를 찾는 여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제가 오늘 선생님에게 이메일을 드린 이유는, 언젠가 다시 저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때는 선생님께 제가 가장 좋아하는 트럼펫 연주자를 자신있게 그리고 진심으로 말씀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Best wishes, Es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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